보성교육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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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교육 변천사

근대이전의 보성 교육백제와 후백제를 거쳐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보성 군내의 교육기관은 향교와 서원으로 대표되고 있다.
향교
보성군의 향교는 595년전에 읍내 남문 외관주산밑인 구교동에 세워졌다. 그 후 읍내 보성리로 옮겼다가 다시 고서편(庫西便)으로 또 옮겼으나 선조 26년(1597)정유재란때 병화를 입었으며, 9년 뒤인 선조 35년(1602)제연해(祭延海)의 주관으로 현재의 자리인 보성리 동륜동에 옮겨 세웠다고 한다.
서원
1) 용산서원(龍山書院) : 죽천 박광전선생(1526~1597)이 보성군 미력면 덕림리 대용산 기슭에 후진양성을 위해 16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2) 대계서원(大溪書院) : 우산 안방준선생(1573~1654)이 보성읍 보성리 장원봉 기슭에 세웠다.
3) 우계정(遇溪亭) :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대원사로 들어가는 시냇가에 있던 정자인데 6·25 사변때 공비들에 의해 불태워 없어졌다가 1989년 보성군에서 복원하였다.
4) 은계정사(隱谿精舍) : 우산 안방준이 말년에 화순군 한천면 매화정(현재는 이양면 매정리)에 집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다 효종 5년(1654)에 여기서 세상을 떠났다.
서당
20세기 초기부터 보성에도 신교육이 밀려들었으나 전통적인 교육방식인 서당은 거의 모든 마을에 설치되어 있었다. 서당의 설립은 인가나 기본자산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훈장과 적당한 글방만 마련되면 가능하였다. 대체로 서당의 설립유형은 다른 고장과 마찬가지로 훈장 자신이 설립한 경우, 유지가 설립한 경우, 몇몇 유지가 설립하는 경우, 그리고 부락민의 참여에 의하여 설립한 경우 등 4가지이며 교육내용은 강독(講讀), 제술(製述), 습자(習字) 등이다.
서당의 교육은 유교의 충효사상과 전통풍습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고수하는 의식을 길러내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은 1919년 서당규칙을 만들어 서당이름, 장소, 학생수, 교수방법, 책, 훈장 등에 대한 통제를 가하여 보통학교장으로 하여금 감독하도록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보성교육 일제강점기의 학교제도나 교육정책이 전국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으로 당연히 보성군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중앙정부와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제의 신교육이 고을마다 확산되기는 도시나 중앙정부 인근지역에 비해 다소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사립벌교유신학교
사립광신학교가 들어서기 5개월 전에 벌교에는 사립유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지금의 벌교초등학교 전신이 되는 유신학교는 1913년 4월 사립벌교포학교, 1917년 4월 14일 벌교공립보통학교, 1935년 4월 25일 칠동 간이학교를 부설하고, 1938년 4월 1일 벌교남심상소학교로 개칭되며, 1940년 4월 20일에는 낙성간이학교를 부설했다. 일제강점기 설립이후 10대까지의 교장은 기록이 없다.
복내보통학교
1920년 7월 1일 설립인가를 받은 복내공립보통학교는 같은 해 10월 2일 4년제로 개교되고, 개교 당시 일본인 교장 中村反男은 불과 3개월의 재직을 기록했으며, 9대 교장이 일본인으로 메워졌다. 보성군 관내의 초등학교 가운데 학교설립인가에서부터 역대 교장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기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조성공립보통학교
1921년 6월 20일에 설립인가를 받고 9월 24일 개교되었다.
회천보통학교
1923년 6월 20일 설립인가를 받고 그 해 9월 1일 개교되었다. 1938년 4월 회천공립보통학교로, 1941년 4월 회천공립심상학교로 개칭되었다.
득량 등 20개 보통학교 설립
1924년 득량교를 시작으로 1944년 장도교까지 군내 각면에 1개 이상의 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보성군 학교현황
일제강점기의 보성군 학교현황에 관한 표
학교명 개교년월일 비고 학교명 개교년월일 비고
사립광신학교 1909.8.31 (보성초등학교) 벌교공립도통학교 부설간이학교 1935.4.25 (벌교서초등학교) '99.9.1폐교
사립유신학교 1909.3.10 (벌교초등학교) 득량공립보통학교 부설해평간이학교 1936.4.30 (득량남초등학교)
복내공립보통학교 1920.7. 1 (복내초등학교) 보성북공립심상소학교 부설옥야간이학교 1937.6. 5 (노동남초등학교) ‘94.3.1폐교
조성공립보통학교 1921.7. 1 (조성초등학교) 보성북공립심상소학교 부설옥야간이학교 1938.7. 1 (보성서초등학교) ‘99.3.1폐교
회천공립보통학교 1923.6.20 (회천초등학교) 벌교남국민학교 부설낙성간이학교 1940.4.20 (낙성초등학교)
득량공립보통학교 1924.4.10 (득량초등학교) ‘00.3.1분교장격하 청송초등학교 장도분교장 1944.5. 1 (장도초등학교) 00.3.1분교장격하
겸백공립보통학교 1925.8. 7 (겸백초등학교) 율어공립보통학교 1930.8.22 (율어초등학교)
문덕공립보통학교 1926.8. 3 (문덕초등학교) 노동공립보통학교 1932.3.5 (노동초등학교)
미력공립보통학교 1928.6.28 (미력초등학교) 문덕공립보통학교 부설용암간이학교 1933.4.16 (문전초등학교) ‘99.3.1폐교
웅치공립보통학교 1929. 9. 1 (웅치초등학교) 회천보통학교 1934. 4.27 (회천초등학교)
야학과 농촌계몽운동
1919년 기미 3·1운동이 발발하면서 민족운동의 하나로 농촌에는 문학보급 즉 문맹퇴치운동이 물밀 듯이 일어났다. 보성군 일대에서도 이 운동은 특히 1920년부터 1930년까지 10년 동안 민족운동, 사회평등운동과 보조를 맞추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보성공립농업실수학교
일제의 식민지정책은 조선인의 고등교육기회를 되도록 박탈한 결과, 초등 및 실업중심교육정책으로 보성군내는 단 한 개의 중등이상의 교육기관도 설립되지 못하였다. 다만 해방되기 직전에 보성공립농업실수학교를 설립하면서 흡수되었다.
따라서, 보성공립농업실수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학생 60명은 보성중학교 발족과 함께 제2학년으로 입학되어 보성중학교 제1회 졸업장을 받았다.
현대의 보성교육
미군정기
해방 이전까지의 보성군 관내에는 보성북공립초등학교, 벌교공립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모두 20개 초등학교가 설립 운영되고 있었다. 여기다 중학교 과정은 보성농업실수학교가 고작이었다. 미군정기인 1945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시까지 보성남초등학교, 조성남초등학교, 회천서초등학교와 보성공립중학교, 벌교중학교 등 2개 중학교가 설립되었다.
자유당 군정기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반란 사건의 여파와 6.25사변으로 보성의 교육은 전남의 다른 지방에 비해 훨씬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반란의 영향으로 좌우익의 이념갈등은 더욱 심화되어 인심은 흉흉하였으며, 학교교육은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년 뒤에 발발한 민족의 비극 6.25사변은 북한의 피난민이 대거 남하함에 따라 군내의 각 마을에서 피난생활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교실이 없어 노천이나 임시방편의 가교사에서 수업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1951년 4월부터는 부락단위로 학부모들의 노력부담이나 출연으로 가교실 건축사업을 벌여 2세 교육에 안간힘을 쏟았다. 정부에서도 주한UN군의 지원으로 K.C.A.C 등 국제기구를 통하여 가교실 건축자재를 원조 받아 교육시설을 확충하기도 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기간동안 보성교육의 특색은 정부의 문맹퇴치 5개년 계획을 수행하는 것과 초등학교와 3개의 공·사립중학교가 시설되었다는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특히, 교육자치제로 1952년 6월 4일 보성교육구청이 군청회의실에서 개청되었다는 사실이다. 보성교육구청은 1953년 보성읍 보성리 857번지 현 우체국 자리로 이전하였고, 1958년에는 지금의 군농협인‘구’조흥은행 보성지점자리로 이전한 것이다. 또한, 초대 교육구청 책임자로 현응우씨가 1952년 8월 8일 취임하고 1954년 2월 11일에는 안도영씨가 교육장으로 취임하였고, 이 시기의 개교학교는 조성중학교, 복내 중학교, 예당농공기술학교(예당중학교 전신), 고등공민학교 등이 있었다.
민주당 정권기
최초의 여자중학교인 보성여자중학교는 4.19학생의거 하루 뒤인 1960년 4월 20일 인가되어 개교되었기 때문에 엄격하게 본다면 자유당 정권에 의해 설립되었다 볼 수 있다.
군사정권기
교육자치제가 실시된 지 9년만인 1962년 2월 1일자로 보성교육구의 행정권한도 내무부산하인 보성군에 귀속되어 군청내의 1개과인 교육과로 편입되고 말았다. 5.16군사 쿠데타 당시의 교육감 변재영은 1963년 2월 16일까지 재직하고 이어 박제구가 인계받아 1964년 교육자치제가 부활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공화당 및 유신정권기
교육자치제가 실시된 지 9년만인 1962년 2월 1일자로 보성교육구의 행정권한도 내무부산하인 보성군에 귀속되어 군청내의 1개과인 교육과로 편입되고 말았다. 5.16군사 쿠데타 당시의 교육감 변재영은 1963년 2월 16일까지 재직하고 이어 박제구가 인계받아 1964년 교육자치제가 부활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교육과정 변화

제1차 교육과정(1954~1963)
1950년 문교부령 제9호로 교수요목 제정을 공포하고 교육과정구성 심의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6·25동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951년 3월에 문교부령 제16호로 교육과정 연구위원회 규정을 공포하여 교수요목제정심의회에서는 교육과정 내용을 연구하고 교육과정 연구회에서는 교수시간 조직에 관한 문제를 주로 연구하게 하였다. 1954년 4월에 문교부령 제35호로 각급학교의 교육과정 시간배당기준령을 공포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과정인 것이다.
초등학교 교육과정
  • 교과활동 : 국어, 산수, 사회생활, 자연, 보건, 음악, 미술, 실과(4,5,6년)
  • 특별활동 : 주당 1학년(24시간), 2학년(25시간), 3학년(27시간)
중학교 교육과정
  • 필수과목 : 국어, 산수, 사회생활,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실업가정
  • 특별활동 : 주당 1학년((34~48시간), 2학년(34~38시간), 3학년(34~38시간)
제2차 교육과정(1963~1973)
1955년에 제정된 교육과정은 교육과정 구성상 미비점이 있었고 사회변화 등으로 개정의 필요가 요청되었다. 1963년 2월 15일에 제2차 교육과정을 문교부령 제120호로 공포하여 실시하게 되었다. 이 교육과정은 자율성, 생산성, 유관성을 강조하였고, 각 교과구성의 합리성과 아울러 운영면에서 지역성을 강조하였다. 이 교육과정(생활중심, 경험중심교육)이 1955년에 제정한 교육과정과 비교하여 달라진 주요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 시간 배당 기준과 교과과정내용이 제정되었다.
  • 학년별 주당시간이 정해졌고 교과별로 주당시간을 시간으로 나타났다.
  • 교과활동, 반공 도덕생활, 특별활동으로 구성하였다.
  • 학년별 주당 시간이 대체로 1시간씩 줄었다.
  • 목표 지도내용, 지도상의 유의점으로 통일하였다.
  • 계통학습을 통하여 기초학습의 충실을 기했다.
  • 학년목표를 세워 목표와 내용에 일관성이 있도록 하였다.
  • 저학년에서 종합지도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1969년 9월 4일 문교부령 제251호로 교육과정의 일부가 개정 보충되었고, 부분개정에서는 반공, 도덕생활을 강화하고 특별활동을 체계화한 것이 특징이다.
제3차 교육과정(1973~1981)
이 교육과정은 국민교육헌장 이념구현을 기본방향으로 삼고 국민적 자질의 함양, 인간교육의 강화, 지식과 기술교육의 쇄신을 기본방침으로 삼았다. 그리고 교육과정에 나타난 특징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교육목적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교육법과 국민교육헌장이 지향하고 있는 인간상을 구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 교육과정의 조직으로 보아 각급학교 사이의 계통적 학습이 강조되고 학문상 분열이나 분복되지 않도록 일원화된 지식구조의 체계화에 노력하였다.
  • 교육내용 선택에 있어서 지식의 구조를 강조하고 학문중심 교육과정으로 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 학습방법으로 발견탐구의 과정과 기본개념의 이해과정을 강조하였다.
  • 교육의 효과평가는 학습의 과정에 중점을 두어 사고력, 분석력, 창의력의 발달을 중요시 하였다.
  • 교과활동, 반공·도덕생활, 특별활동의 3개영역이던 것을 제3차 교육과정에서는 반공도덕생활영역을 도덕과로 개편하여 교과 영역으로 포함시켰다.
  • 시간 배당면에서는 교과별, 학년별로 연간 최소 시간량으로 단일화하였다.
제4차 교육과정(1981~1987)
지금까지 학문중심 교육과정이 학문적 적합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다른 측면의 적합성에 관한 고려가 희박하여 졌다는 점이다. 제5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교육혁신과 문화 창달”이 국정지표의 하나로 설정되었고, 1980년 7월에는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교육개혁”조치가 단행되었는데 교육의 외형적인 정비와 아울러 내용적인 개선을 이룩하기 위해서였다. 제4차 교육과정은 정의로운 민주 복지사회의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새 한국인을 길러 내기 위하여 국민정신 교육의 체계화, 과학기술교육의 강화, 전인교육의 충실에 역점을 두어 구성 한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교육에서 지향해야 할 인간상은 “새 시대에 맞는 교육, 개인의 자아실현, 미래사회 전망”에 두고 건강한 사람, 심미적인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도덕적인 사람, 자주적인 사람을 육성하도록 강조하였다. 교육과정의 편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분과하였던 교과서를 통합하여 바른생활(1,2학년 체육, 음악, 미술 통합), 슬기로운 생활(1학년 산수, 자연 통합), 즐거운 생활(1,2학년 체육, 음악, 미술 통합)로 통합하였으며, 1학년에 한하여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건강증진을 위하여“우리들은 1학년”교과서를 통합 편찬하여 3월 한 달 동안 가르치도록 하였으며, 그 외 교과는 분과로 종전과 같이 하였다. 편제와 시간배당은 교과활동과 특별활동으로 편성하였으며, 교과간의 통합지도를 1,2학년에서 하도록 하였으며, 연간 수업 일수를 축소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제5차 교육과정(1987~1992)
제5차 교육과정은 자율화, 개방화, 정보화, 국제화로서 고도 산업사회로 발전하게 되는 21세기를 주도할 주체적이고 창조적이며 도덕적인 한국인을 기르고 다가올 복지국가 건설과 반드시 이룩해야 할 조국통일에 대비하는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강조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제5차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의 적정화, 내실화, 지역화를 개정의 방침으로 하고 지속성(제4차 교육과정의 기본성격 유지), 점속성(혁명적인 개혁보다 현실 여건을 고려한 점진적인 개선), 효율성(교육과정이 의도하고 기대하는 교육적 성취를 가져오도록 하는 제반 조치의 시행) 등을 개정의 전략으로 하였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①기초교육의 충실화, ②저학년 통합교육과정의 구성, ③미래사회 대비 교육의 강화, ④교육과정 운영의 효율성 제고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고도 산업사회, 통일된 조국에 대비하는 미래 지향적인 입장에서 건강한 사람, 자주적인 사람, 창조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을 기를 것을 역점 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요 특징은, 기초 교육의 강화(초등학교에서의 국어, 산수 교과 독립, 기초 기능향상을 위한 말하기, 듣기, 쓰기, 셈하기 등의 교재 신편, 중학교에서의 기초 과학 교육 강화 : 수학 복수 시간 증대와 기본적 실험?실습 중시), 국가별 활동의 강화(초등학교 1,2학년에 특별활동 시간 배당, 학급활동의 강화 및 생활지도를 특별활동에 포함, 특수학급 설치 운영 근거 마련), 초등학교 저학년의 교과통합(교과서 수준에서만 통합되었던 것을 교육과정 수준에서 통합하여 통합교과 구성), 교육과정의 지역화, 교육내용의 양과 수준의 적정화 등이다.
제6차 교육과정(1992~1999)
1990년 제6차 교육과정은 개정 작업을 시작한 때는 21세기를 10년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그 시점은 한 세기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준비해야 하는 전환기의 출발점이었다. 민주화, 정보화, 국제화를 향해 급속하게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와 사회의 전개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교차되는 전환기에 우리의 학교교육은 어떠한 인간을 기르는데 역점을 둘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시작되었다. 복잡하고 다양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합의된 인간상은 “건강하고, 자주적이고, 창의적이며, 도덕적인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성은 다원화 되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결코 특정한 단일가치를 지향하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공교육으로 기르고자 하는 이 인간상은 다원주의 가치체계가 포함할 수 있는 기초적이고 통합적인 인간 특성의 차원에서 설정되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보편성의 신념위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며, 바로 가장 중요한 하나의 강조점이라는 의미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제 6차 교육과정을 통해서 추구하는 이 인간상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 건강한 사람 :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 자주적인 사람 : 개성 있고 자율적인 사람 (주체적 자아의식을 가지고, 개성을 추구하면서 자율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며, 권리와 책임을 균형있게 의식하는 사람)
  • 창의적인 사람 : 창의성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사고력과 함께 그것을 실천에 옮겨 가치있는 것을 창출해 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
  • 도덕적인 사람 :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한 일을 실천하는 사람 (분명한 가치체계와 판단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관용적인 태도와 개방적인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선한일에 헌신하는 사람)
제7차 교육과정(2000 ~ )
제7차 교육과정의 기본방향
  • 목표 : 건전한 인성과 창의성을 함양하는 기초,기본 교육의 충실
  • 내용 :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자기 주도적 능력의 신장
  • 운영 : 학생의 적성, 능력, 진로에 적합한 학습자 중심 교육 실천
  • 제도 :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대한 지역 및 학교의 자율성 확대
제7차 교육과정의 개정 중점
  •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의 편성과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 도입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10년간을“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으로 설정하여 학년에 따라 일관성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고등학교 2?3학년에서는 교과에 따라 일반 선택과 심화 선택으로 나누고,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하여 과정?계열의 구분 없이 운영함으로써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힘.
  • 수준별 교육과정의 도입
    학생의 능력(개인차)에 따른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교과 특성에 따라 단계형, 심화?보충형, 과목 선택형의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
  • 재량 활동의 신설,확대
    6차 교육과정에서의 학교 재량시간을 “재량활동”으로 신설?확대하고, 재량활동의 운영은 주제탐구, 학습하는 방법의 학습, 통합적인 범교과학습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학교, 교사, 학생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편성하여 선택적으로 운영하도록 하였다.
  • 학습량 최적화와 수준 조정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과별 최저 필수 요소 중심의 학습 내용을 정선하고, 범위와 수준도 조정하였으며, 학교 급별 이수 과목 수도 축소하였다.
  • 교육과정 평가 체계 확립
    학생이 성취해야 할 교과별 성취 기준을 설정하고 이 기준에 따라 학력을 평가하고 학교별로 편성하는 교육과정 평가 체계를 확립하였다.
  • 창의성, 정보 능력 배양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컴퓨터 교육과 개방적, 창의적 교육활동을 강화하였다.
  • 특별활동 영역 구체화 제시
    6차 교육과정에서는 특별활동의 영역을 학급 활동, 클럽활동으로 설정하였으나, 7차 교육과정에서는 자치 활동, 적응 활동, 계발 활동, 봉사 활동, 행사 활동으로 세분하여 균형 있는 지도를 하도록 하였다.
  • 담임교사의 자율 재량권 확대
    주당 평균 3시간 이상의 수업 시간 수가 배당된 교과는 주당 평균 1시간 이내에서 시수를 감축하여 학생의 요구와 필요에 따른 창의적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1학년 입학과 동시에 3월 한 달 동안 지도할 “우리들은 1학년”의 경우 종전의 70시간에서 80시간으로 확대하여 증배된 10시간은 담임교사의 재량에 의해 입학 초기 학교 적응 활동을 다양하고 융통성 있게 운영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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